말 바꾼 삼성 이재용 재판부 “준법감시위 점검하겠다…양형 반영” - 한겨레
이재용 파기환송심 4번째 공판
재판부 “준법감시위 실효성 점검 위한
‘전문심리위원단’ 도입 제안”
특검 “재판 결과와 무관하다 했는데
결국 양형 반영…불공정 우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3회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을 진행하는 재판부가 최근 삼성이 꾸린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점검해 이 부회장의 형량을 정하는 데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첫 재판 때 이 부회장에게 준법감시제도를 만들 것을 주문하면서 “재판 결과와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어, 재판부가 사실상 말을 바꿨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은 “재판이 불공평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2심 재판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 부회장은 지난해 9월 대법원 판결에서 뇌물 액수가 두 배로 늘면서 기존 재판이 파기돼 다시 2심을 받고 있는데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17일 오후 이 전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4차 공판을 열어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를 이 전 부회장의 양형 사유에 포함하겠다고 했다. 재판부는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 양형 심리와 관련해 (삼성이) 제시한 준법감시제도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판부 요구로 삼성이 꾸린 준법감시위를 이 부회장의 형량을 정하는 데 반영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형사소송법 279조에 따라 제3자 전문가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시행되는지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3명의 전문심리위원단을 구성할 계획이라며 강일원(61) 전 헌법재판관을 전문심리위원 중 한명으로 지명했다. 형소법 279조2항을 보면, 소송관계나 소송절차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을 둘 수 있고, 이들은 전문 식견이 담긴 서면이나 설명을 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은 재판 합의에는 참여할 수 없다.
특검은 재판부가 ‘말을 바꿨다’며 재판부의 전문심리위원단 구성 제안을 반대했다. 특검은 “재판장님은 준법감시위원회를 분명히 양형 사유로 보고 있다. 첫 공판에서는 (준법감시제도가) 재판 진행 결과와 관계가 없다고 말했는데 달라진 것”이라며 “재벌체제 혁신 없는 준법감시제도와 전문심리위원 도입에 반대하고,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 재판부는 지난해 10월25일 열린 이 전 부회장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재판 진행이나 재판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밝히면서 이 부회장에게 △준법감시제도 마련 △재벌체제 혁신 △총수 이재용의 선언 등 3가지를 주문했다. 당시 이례적인 주문에, 재판부가 이 부회장 쪽에 유리한 양형을 염두에 두고 요구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파기환송심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평소 피고인의 반성이나 치료 등을 전제로 형량을 낮춰주는 ‘회복적 사법’을 주창해왔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이후 삼성은 재판부의 3가지 주문 중 준법감시제도 마련에 집중했고, 지난 9일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렸다. 삼성은 나머지 두 가지 주문에 대해서는 별다른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 이 전 부회장 쪽은 “최고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고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 경영진의 준법 의지를 표명하고 준법 문화를 정착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새로 꾸려진 준법감시위 활동 내용을 20분 남짓 소개했다.
그러나 특검은 “재판부도 언급했던 지배구조 재편 등 재벌체제를 막는 혁신 없이 준법감시제도만 도입하면 오너 변심에 따라 언제든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항간에서는 재판부의 언급과 삼성의 준법감시위 설치, 김지형 위원장의 기자회견 등이 ‘이재용 봐주기’ 명분 쌓기가 아니냐고도 한다. 재판부가 그런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며 “지배구조 재편과 더불어 준법감시제도를 검토하고, 적극적인 뇌물 제공 등 다른 양형 사유와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심리를 강력히 부탁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반면 유무죄 판단을 끝낸 대법원 취지에 따라 “개별 현안은 입증할 필요가 없다”며 특검이 신청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와 증거인멸 관련 증거는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특검은 이 증거를 통해 승계 작업 현안이 부정한 청탁의 계기였음을 입증해 양형의 가중 사유로 주장하고자 했다. 이에 특검은 재판부 결정에 이의신청을 하며 “(특검이) 추가 신청한 증거는 핵심 양형증거이다. 이의신청도 기각된다면 재판이 불공평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전 부회장의 ‘감형’ 사유로 반영될 준법감시위 제도 뿐 아니라 ‘가중’ 사유가 될 수 있는 증거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다.
때문에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감형을 염두에 두고 복잡한 절차를 밟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 회계 문제를 지적해온 김경율 회계사는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 준법감시위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또 이를 검증하기 위한 전문심리위원단을 만든다고 한다”며 “이런 복잡한 절차를 통해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를 위한 명분을 쌓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장예지 고한솔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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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7 09:56:02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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